한국 전통 음식에서 빠질 수 없는 조미료, 간장.
그중에서도 조선시대 간장, 즉 ‘조선간장’은 단순한 양념을 넘어서
한 시대의 문화와 정신, 철학을 담은 유산이었다.
오늘은 깊고 진한 풍미를 자랑했던 조선간장의 모든 것을 살펴본다.
조선간장이란? — 간장의 원조
조선간장은 오늘날 흔히 말하는 진간장(양조간장), 국간장(집간장)과는 그 뿌리가 다르다. 조선간장은 콩과 소금만으로 담근 순수한 발효 간장으로, 화학 첨가물이 전혀 없던 시절의 100% 자연식품이었다.
조선간장의 특징
- 짙고 투명한 갈색
- 짠맛이 강하고 깊음
- 국·탕 요리에 적합
- 오랜 숙성기간 (최소 1년 이상)
조선시대에는 간장을 담그는 것이 곧 ‘집안의 격’을 나타내는 일이기도 했다.
간장은 단지 양념이 아니라 가문의 비법이자, 어머니의 손맛 그 자체였다.
조선시대 간장 문화와 기록
《규합총서》 (1809년)
조선후기 여성이 쓴 가정생활서인 『규합총서』에는 간장 담그는 법, 메주 쑤는 법, 장독 관리법까지 매우 세세히 적혀 있다.
“3월에 콩을 삶아 장을 담되, 소금을 정결히 다려…”
계절에 따라 간장 담그는 시기와 비율까지 조절했다.
《임원경제지》 (1869년)
학자 서유구가 집필한 백과사전에는 ‘장 제조법’과 함께 간장을 음식에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한 기록도 등장한다.
이는 단순한 조리법을 넘어서, 장문화를 하나의 과학으로 여겼던 조선의 태도를 보여주는 증거다.
조선간장의 종류
조선시대에도 간장은 한 가지로 통하지 않았다.
용도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뉘었다.
종류 | 설명 |
청장(淸醬) | 맑고 짙은 국간장. 국·탕·찌개용 |
조장(造醬) | 일반 가정용 간장. 집집마다 제조법 다름 |
진장(陳醬) | 오래 숙성한 간장. 간장 중 최고급 |
죽장(竹醬) | 대나무통에 숙성시킨 특별 간장 |
청장은 지금의 국간장과 유사하지만, 조선시대 청장은 한 번도 희석되지 않은 진한 1차 추출물로, 맛의 밀도가 훨씬 깊었다.
조선간장이 쓰인 음식들
조선간장은 거의 모든 음식에 들어갔다.
특히 국물요리, 궁중음식, 제사 음식에 없어서는 안 될 재료였다.
- 장국: 조선판 육수, 대부분 간장으로 간 맞춤
- 궁중잡채: 기름이 적은 대신 간장의 풍미로 맛을 냄
- 어육간장조림: 고기나 생선을 오래 보관하기 위한 방법
- 약선 음식: 몸을 보호하는 약간장의 개념도 있었음
조선시대에는 감칠맛의 핵심은 간장이라고 여겼다.
지방마다 간장 맛이 달랐으며, 메주의 재료와 장독대 위치, 온도, 습도까지 모두 고려해 간장을 담갔다.
이는 ‘우리 집만의 간장’이라는 자부심으로 이어졌고, 혼인을 앞둔 신부에게 장을 담그는 기술은 필수로 여겨지기도 했다.
조선시대 여성과 간장
조선시대의 간장은 단순히 음식 재료가 아닌, 여성의 손끝에서 빚어진 가정의 중심이었다.
부엌살림을 책임지는 안주인은 매년 메주를 띄우고, 간장의 상태를 살폈다.
장독대 앞에서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집안의 평안과 연결돼 있다고 여겼다.
이는 간장이 단순한 발효식품을 넘어, 조선 여성의 삶과 신념을 상징했던 중요한 문화 요소였음을 말해준다.
전통의 계승, 그리고 현대 식탁 위의 조선간장
오늘날에도 전통 방식으로 간장을 담그는 장인들이 전국 곳곳에 존재한다.
이들은 조선간장의 맥을 잇기 위해 콩을 직접 삶고 메주를 띄우며, 소금물 농도와 발효 조건을 철저히 관리한다.
일부 전통 장류 명인은 간장 하나를 담그기 위해 3년 이상 기다리기도 하며,
그 맛은 현대의 공장형 간장과는 비교할 수 없는 깊이와 향을 자랑한다.
최근에는 전통 장 담그기 체험 프로그램이나, 전통 장류를 판매하는 온라인 스토어도 인기를 끌고 있다.
조선간장은 단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식탁에서도 건강한 조미료로 충분히 가치가 있는 존재다.
현대 요리에서도 조선간장을 활용한 레시피가 늘고 있다.
특히 국간장 대체용으로 사용하면 감칠맛과 깊이를 더할 수 있어
전통을 살리면서도 현대인의 입맛에 맞는 요리를 완성할 수 있다.
이처럼 조선간장은 옛 맛을 넘어, 지금도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전통 발효문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마무리: 조선간장은 단지 ‘양념’이 아니었다
조선간장은 단순한 조미료가 아니라,
시간을 담은 발효식품이자, 그 시대 여성들의 손맛과 삶의 기록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된장찌개, 간장게장, 불고기에도 그 뿌리를 찾다 보면 조선간장의 흔적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이제는 잊혀가는 전통의 맛,
조선간장을 통해 다시 한 번 되새겨보는 것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뜻깊은 음식 문화 여행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