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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설날, 가장 귀한 밥상이 오르다

by 머니플로우랩 2025. 3. 29.

설날 궁중요리

 

설날은 조선시대에도 가장 중요한 명절이었습니다.
왕실에서는 이를 국가적 행사로 받아들였고, 왕의 식사 역시 국가의 품격을 상징하는 의례의 연장선으로 여겨졌습니다.

설 전날부터 궁궐 안에서는 정교한 진찬(進饌) 준비가 시작됩니다.
진찬이란 명절이나 경사스러운 날에 왕실이 올리는 공식 연회상을 뜻하며,
음식의 종류, 배치, 색상, 의미 모두 철저한 기준에 따라 제작되었습니다.

왕의 식탁은 단순한 식사가 아닌 정치적 상징과 덕치의 구현이었습니다.
음식 하나하나에는 건강, 장수, 안녕, 백성의 평화를 비는 철학적 가치가 담겨 있었죠.

궁중 설음식, 어떻게 준비되었을까?

궁중 수라간에서는 설 연휴 며칠 전부터 수십 명의 숙수들이 모여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궁중 의궤에 따르면 설 진찬상에는 약과, 다식, 떡국, 산적, 전유어, 나물, 구절판, 탕평채, 숙채, 침채, 조율이시(대추, 밤, 배, 감) 등이 올라갔습니다.

모든 음식은 왕의 체질, 계절성, 재료 간 궁합, 음양오행에 근거해 정해졌습니다.
예를 들어, 겨울철에는 따뜻한 성질의 음식을 위주로 구성하고,
기름기 많은 음식에는 청열 작용이 있는 나물을 곁들이는 등 균형을 고려했어요.

또한 음식의 모양, 색감, 향기까지 정해진 기준이 있어,
단순히 ‘맛’이 아닌 ‘보는 미감’, ‘상징성’, ‘예술성’까지 고려된 진찬이었습니다.

대표적인 궁중 설날 음식들

1. 궁중 떡국

떡국은 새해 첫날 ‘한 살을 먹는다’는 의미로 온 백성이 함께 먹는 음식이지만,
궁중에서는 흰 가래떡을 어슷하게 얇게 썰어,
소고기 맑은 육수에 끓인 후, 황백지단, 전복, 실고추, 석이버섯 등 화려한 고명으로 장식합니다.

떡국의 흰색은 순수함, 둥근 떡은 조화와 화합,
그리고 얇게 썬 떡은 ‘돈’ 모양처럼 보여 풍요를 기원하는 상징도 갖고 있습니다.

2. 전유어 (煎類魚)

소고기, 두부, 생선 등을 밀가루와 달걀 옷을 입혀 부친 전.
왕에게 올리는 전은 모양이 정갈하고 기름기가 과하지 않아야 하며,
동태전, 표고전, 육전 등이 한 상에 나란히 배치됩니다.

**기름에 부쳐낸 전은 ‘풍성함’, 둥근 형태는 ‘완전함’**을 의미하며,
전 종류가 많을수록 복이 많다는 전통이 궁중에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3. 약과와 다식

약과는 꿀, 참기름, 밀가루를 섞은 반죽을 튀긴 뒤 꿀에 절여 만든 전통 과자이며,
다식은 콩가루, 잣, 흑임자 등을 곱게 갈아 꽃무늬 틀에 찍어낸 한입 크기의 다과입니다.

궁중에서는 약과와 다식을 차와 함께 대접하는 고품격 손님접대 음식으로 사용했고,
명절에는 왕이 직접 신하에게 하사하기도 했습니다.

4. 탕평채

영조의 탕평책에서 유래한 음식.
청포묵을 가늘게 썰어 오이, 고기, 김, 달걀지단 등과 버무린 후 간장 양념으로 무친 건강식입니다.

청포묵의 투명함은 청렴, 다양한 고명은 계층과 계파의 조화,
그 모양새는 왕이 꿈꿨던 나라의 통합된 모습을 상징합니다.
설날에는 정치적 안정과 화합을 기원하며 왕실에서 자주 올랐습니다.

음식에 담긴 재료와 상징성

조선 궁중은 단순히 음식 재료를 '맛'으로 고르지 않았습니다.
모든 재료에는 음양오행, 오미(五味), 약리적 성질, 복의 상징이 담겨 있었어요.

  • 대추: 장수
  • 밤: 번창
  • 도라지: 청명한 정신
  • 석이버섯: 귀한 것
  • 나물류: 검소함
  • 흰떡: 순수함, 새로운 시작
  • 둥근 모양: 조화와 재복

이렇듯 하나하나의 재료와 형태가 명절을 맞는 왕실의 자세를 보여주고,
왕은 음식을 통해 백성에게 모범을 보이고자 했습니다.

설 이후에도 이어지는 궁중 식문화

설 진찬이 끝나면 왕은 가례나 하례를 받는 행사를 진행하며
신하들에게 떡, 다과, 술 등을 하사하였습니다.

또한 설날에는 왕이 **직접 내리는 은전(恩典)**이 있었는데,
이는 음식 외에도 벼슬 승진, 죄수 감형, 백성에 대한 곡물 하사 등으로 이어졌습니다.

즉, 궁중 설음식은 식탁 위의 외교이자 통치의 도구이기도 했습니다.

마무리하며

조선의 설날 궁중요리는 그저 왕이 먹는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그 속엔 왕실의 권위, 조화와 질서, 백성을 향한 상징적 소통이 담겨 있었고,
정갈한 음식 하나하나가 문화, 정치, 예술, 철학이 깃든 완성체였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설 밥상 역시 떡국, 전, 다식 같은 음식을 통해
그 시대의 전통을 자연스럽게 계승하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설 명절, 조선시대의 궁중 상차림을 참고해
조금 더 의미 있고 품격 있는 한 상을 준비해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