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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실의 다과상, 정성과 품격이 담긴 전통의 미학

by 머니플로우랩 2025. 3. 30.

조선왕실의 다과상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하루 중 차와 다과를 즐기는 시간이 단순한 간식 시간이 아닌 의례이자 문화로 여겨졌습니다. 특히 왕비나 세자빈이 거처하던 중궁전, 교태전 등에서는 정기적인 다례(茶禮)가 진행되었고, 이때 차와 함께 진설된 다과상은 왕실의 품격과 교양을 상징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다과상은 왕실 여성들이 손수 빚은 한과, 다식, 정과 등으로 구성되며, 고운 백자와 황동 그릇에 정갈하게 담겨 그 자체로 절제된 아름다움과 전통 미학을 드러냈습니다.

왕실 다과상의 구조와 철학

왕실 다과상은 먹기 위한 간식 그 이상이었습니다. 절제, 상징성, 건강, 예절이라는 네 가지 요소가 핵심입니다. 과한 장식이나 진한 맛보다는 정제된 형태, 은은한 향, 자연의 색을 중시했고, 차림 구성에도 기후, 계절, 대상의 건강 상태까지 고려되었습니다.

대표적인 궁중 다과상 구성

  • 약과: 꿀과 밀가루, 참기름 반죽을 기름에 튀긴 뒤 꿀에 절인 전통 한과
  • 유과: 찹쌀을 발효시켜 튀긴 뒤 조청과 쌀튀밥을 묻힌 폭신한 식감의 과자
  • 정과: 생강, 귤피, 대추 등을 조청에 졸인 과일 과자
  • 다식: 콩가루, 흑임자, 잣 등을 빻아 문양 틀에 찍어 만든 한입 과자
  • 숙실과: 삶은 밤, 배 등을 꿀에 조린 고급 디저트류
  • 전통차: 유자차, 대추차, 매실차, 쌍화차 등 계절과 체질에 맞는 음료
  • 음복주: 약간의 감주나 약술을 곁들여 격식을 더함

왕실 다과상은 원형 반상 또는 나무 쟁반 위에 좌우 균형을 맞춰 담아냈고, 그릇의 색, 음식의 높낮이, 배치 순서까지도 예법에 따라 정해졌습니다.

음식에 담긴 상징과 의미

궁중에서 다과는 단순히 ‘맛’을 즐기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왕실의 가치관과 철학을 표현하는 상징물이었습니다.

  • 약과: 꿀의 단맛은 복을, 둥근 모양은 조화를 의미
  • 유과: 하늘과 땅의 조화를 상징하는 전통 한과
  • 다식: 다식판에 새겨진 문양은 ‘복(福)’, ‘수(壽)’, ‘길상’ 등 길한 기운
  • 정과: 자연 그대로의 재료에 손길을 더한 정성의 상징
  • 차: 대추차는 양기를 보하고, 매실차는 소화를 돕고, 쌍화차는 기력을 보완

왕은 몸의 기력을 보완하기 위해 쌍화탕이나 황기차를, 왕비는 기순환과 피부를 위한 유자차나 오미자차를 즐겼다고도 전해집니다.

역사 속 기록에서 보는 다과상

궁중의 다례는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의례적인 행사로도 활용됐습니다. 조선왕조실록과 의궤 등에는 정기적으로 열리는 다례 기록이 등장하는데, 특히 세자빈, 왕비, 대비의 공간에서 진행된 다례는 왕실 여성들의 정치적 네트워크 형성과 상호 교류의 장이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영조 대에는 세자빈이 직접 다식을 만들고, 다식판의 문양을 바꿔 계절에 따라 복숭아꽃, 매화, 국화, 소나무 등 상징을 달리하며 정성과 교양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왕실 여성들의 손맛은 그들의 예술 감각, 정치적 섬세함, 신하와의 소통 능력을 보여주는 수단이었고, 하나의 다과상에는 한 국가의 질서와 상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계절별 왕실 다과 구성

  • 봄: 봄나물 다식, 생강정과, 산딸기차
  • 여름: 차가운 매실차, 유자정과, 수박 껍질 유과
  • 가을: 대추 다식, 밤 정과, 수정과
  • 겨울: 꿀 유과, 약과, 쌍화차, 생강차

이처럼 다과상은 자연의 흐름과 조화를 맞추는 철학적 식문화로도 기능했습니다.

현대에 되살아나는 다과상 문화

오늘날 왕실 다과상은 전통의 상징이자 힐링의 콘텐츠로 새롭게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궁중문화축전, 한복문화주간, 국립고궁박물관 등에서 궁중 다과상 재현 시연, 전통 다식 만들기 체험, 한과 전시 등이 활발하게 열리고 있고, 전통 한정식 레스토랑이나 전통 찻집에서도 이를 기반으로 한 ‘다과 코스’를 제공합니다.

한편, 모던 한과 브랜드들은 유과, 약과, 다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선물세트나 웰빙 간식으로도 인기를 끌고 있으며, 조선 왕실의 식문화가 오늘날 일상 속 품격 있는 휴식으로 재탄생하고 있습니다.

마무리하며

왕실의 다과상은 단순한 ‘디저트’가 아닙니다. 그 안에는 계절, 건강, 미감, 예절, 정서, 철학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궁중 다과는 작고 정갈한 음식 속에 조선 왕실의 가치관과 문화적 깊이를 고스란히 담아낸 전통의 결정체였으며, 현대인에게는 고요하고 따뜻한 미감의 세계로 안내하는 문화 콘텐츠가 되고 있습니다.

다음 명절, 혹은 조용한 오후에 한 잔의 차와 정성스러운 다식을 곁들인 작은 다과상을 차려보는 건 어떨까요? 조선의 미학이 당신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 것입니다.